개인적인 경험을 적은 글입니다.
통상의 혼수와는 다르게.. 냉장고는 대우 BHRS57HRO.. 양문형이지만 좀 볼품없는 500리터급..
대우 12킬로 일반형 세탁기.. TV는 40인치 벽걸이... 그리고 약간의 소품들로 이뤄진..
그야말로 소박한 혼수세트였다..
아침 일찍 사전전화를 드렸더니.. 전화를 받으시는 아주머니 목소리가 어째 좀 이상했다..
뭔가 영 마뜩찮다는 느낌이 뚝뚝 묻어나는.. 짜증섞인 목소리..
혼수를 들인다는 게 얼마나 경사스런 일인데.. 아침부터 왜 이리 짜증을 내시나... 원..
고객 댁에 도착해 살펴보니.. 신혼 당사자들은 모두 출근했고..
그 댁 2층에 사는 시부모될 어르신들이 내려와 가전제품을 받게된 모양인데...
아주머니가 계속 상품 하나하나에 삿대질을 해가며 불평을 해대는 것이었다..
"냉장고가 대우꺼네? 삼성이나 엘지로 사지.. 왜 대우로 샀대? 그런데 웬 먼지가 이렇게 많아?
세탁기도 드럼이 아니네? 12킬로짜리 가지고 이불 세탁이 제대로 되나?"
냉장고와 세탁기 설치가 끝나고.. 이번엔 40인치 TV를 꺼내놓자.. 또 한 번 불평이 쏟아졌다..
"난 또 벽걸이 티비라고 해서.. 꽤나 큰 TV로 사 보내는 줄 알았더니.. 별로 크지도 않네?
아니.. 냉장고며, 세탁기며, 이런 혼수 보낼 거면서.. 신혼집 좁다는 타박은 왜 했대?"
아주머니의 혼수 트집이 이쯤 되자.. 그 댁 바깥양반이 담배 한 대 피자며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나야 담배는 안 피우지만.. 뭔가 할 얘기가 있으신 모양이다 싶어 따라 나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숨을 푹 내쉬며.. 아주머니 심사가 틀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집이 좁다는 타박.. 그것도 저쪽 안사돈이 '저희들끼리 내보내 살게 할 것이지..
왜 집도 좁은데.. 신혼인 아이들을 아래층에 데리고 살려 하는지...'운운한 게..
하필이면 이 아주머니 귀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자.. 이쯤 되면 스토리는 빤한 것이다.
딸이 시댁으로 시집살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젊은 부부들끼리 따로 나와 살기를 바라는 것은
세상 모든 친정어머니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위, 아래층 따로 산다고 해봐야.. 어차피 시집살이는 마찬가지일 테고..
신혼집이나 아니나.. 좁아터져서.. 집들이 손님 한 번 치르기도 어렵겠더라...
또 니들 사는 집에 한 번 들르고 싶어도.. 사돈들 어려워서 어디 출입인들 맘대로 하겠니..?”
친정어머니는 딸을 붙잡고 이렇게 하소연을 했을 테지만..
대체 이 얘기가 어떻게 시어머니될 사람의 귀에까지 전해졌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겠지만..
아들 가진 부모가 아무래도 ‘갑’이 되는 우리나라의 혼인 역학구도상..
이런 민감한 얘기를 친정어머니가 사돈 얼굴 맞대고 했을 리는 만무하고..
어쨌거나 예비신부의 입으로부터 시작됐을 확률이 가장 높다..
어쨌거나.. 꼬장꼬장해 보이는 시어머니랑 함께 살 일도 큰일인데..
시집살이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시어머니 자존심을 건드려 사이가 틀어져 버렸으니..
앞날이 막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