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을 적은 글입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니까 그러네!”
“글세.. 그럴만한 사정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우리가 오후 내내 기다려야 하냐구요?”
“거시기... 사실은 말이여...
내가 구청에서 뭐 지원 받아서 사는 생활보호대상자여..
그란디... 그 크고 번쩍번쩍한 양쪽문 냉장고가 우리 집에 들어와 봐...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것어? 얼마나 쑥덕쑥덕 입방아를 찧어 대겠냐구...?
긍께.. 이따가 날이 저물면.. 저 뒤 반대쪽 엘리베이터 타고 조용히 오셔... 으잉?”
일 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게 바로 저녁 시간에 오라는 '야간' 건이다.
3~4시 쯤에 일이 끝났는데.. 마지막 한 집이 야간 건이면.. 별 수 없이 PC방 같은 데 가서..
고객이 귀가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집에 사람이 없어서 냉장고를 못 받는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그런 시덥잖은 이유로.. 우릴 몇 시간씩 기다리라고 하니.. 어찌 짜증이 나지 않으랴만..
할머니는 너무도 완강하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날이 저물고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드디어 이제 와도 된다는 할머니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아뿔싸..!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낡고 오래된 임대아파트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할머니가 넣고 싶어하는 작은 방에는 아예 들어갈 수도 없고..
복도에 놓자니.. 사람이 옆으로 게걸음을 쳐서 다녀야할 판이다.
“어머니.. 보세요.. 냉장고문, 현관문, 신발장까지 뜯어내면..
어떻게 들어가긴 하겠지만.. 이 방향으로 놓으면 여기까지 튀어 나오는데...
사람이 어떻게 지나다니겠어요? 안돼요.. 안돼..”
“웬만하면 그냥 넣어줘.. 내 소원이랑게.. 소원.. 나도 죽기 전에 예쁜 냉장고 한번 써보고 싶어~~
오죽하면 생활보호대상자가 딸한테 카드까지 빌려서 샀겠어? 으잉?”
나는 ‘들어갈 수만 있으면.. 무조건 밀어 넣자’는 원칙으로 배송을 하고 있다.
그 집에 어울리든 말든.. 문이 열리든 말든.. 통행이 불편하든 말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밀어 넣어야..
하이마트도 돈을 벌고.. 나도 용역비를 받을 것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야 원래 완고한 원칙주의자이지만.. 그래도 나의 첫 번째 원칙은 바로 ‘융통성’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경우가 바로 그 융통성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사리분별이 어두운 이 가여운 할머니가..
냉장고 앞으로 지나다닐 때마다.. 게걸음을 쳐야 하고..
뭐 하나 꺼낼라치면 옆으로 몸을 구기고 비켜야.. 겨우 문이 열릴 게 뻔한데..
그런 걸 다 예견하고서도.. 그냥 냉장고를 밀어 넣기는.. 차마 마음이 편치 않다.
길바닥에서 여태껏 기다린 시간이 못내 아깝고 억울했지만..
어찌하랴... 무조건 밀어 넣자는 나의 원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그래도 그렇지.. 7평 아파트에 한 평짜리 냉장고를 어떻게 넣어요?
주무실 때 다리는 어디로 뻗으시려구요? 모터 돌아가는 소리에 잠도 못 주무세요...
그건 냉장고를 쓰는 게 아니고.. 받들어 모시고 사는 거라구요!
고집부리지 마시고.. 내일 매장에 가셔서.. 작은 걸로 바꾸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