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을 적은 글입니다.
드럼세탁기 배송 건이 있는데 좀 신경을 써 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 집이 원래 아주 잘 살던 집이었는데.. 어찌어찌 아주 망해버려서..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게 됐나 봐요..
친척분이 17kg 드럼세탁기를 사 주면서.. 혹시 설치 장소가 좁더라도..
내색하지 말고.. 잘 좀 설치해 달라고 하시네요...”
얘긴 즉.. 그렇잖아도 우울한 고객의 심사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해달라는 얘기다.
넓고 우아한 집에 살다가.. 비좁은 반지하 셋방으로 쫓겨 내려온 처지도 서글픈데..
세탁기 배달하러 온 낯선 사람들한테..
집이 좁다느니.. 세탁기 문 열릴 틈도 없다느니.. 하는 소리까지 들으면..
그 심사가 오죽하겠냐는 얘기다.
집집마다 배송을 다니다보면 이러한 경우는 수시로 만나게 된다.
상계동 당고개역 너머 판자촌이나.. 녹천역 근처 재개발 대상지...
그리고 모든 배송기사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혀를 내두르는..
중계본동 20번지 일대에 가보면.. 냉장고는커녕.. 세탁기 한 대 넣을래도..
출입문을 다 들어내야 하는 집이 수두룩하다.
그런 집에서 양문형 냉장고를 주문해 놓았으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줌마.. 냉장고 문짝을 다 분해하고도 택도 없이 못들어 가잖아요..
집안에 냉장고 놓을 자리도 없구만.. 이렇게 큰 걸 왜 사셨어요?
한 300리터급 정도 놓으면 딱 어울리겠구만...
집구석 생긴 걸 계산해서 냉장고를 사야지.. 이게 뭐예요? 안그래요.. 아줌마?’
힘들여 싣고 나왔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다시 되돌아가야 하고..
게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재입고하러 끌고 갈 고생을 생각하면..
꼭 이렇게 분풀이를 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유니폼 입고, 명찰까지 달고 있으니...
그냥.. 고객 기분 상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둘러대곤 한다.
사실 고객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기 집 좁다는 것, 냉장고가 커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또는 반지하로 냉장고를 내린다던지.. 아니면 계단을 돌고 돌아 옥탑방까지..
냉장고를 끌어올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정도는.. 굳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자격지심까지 가지고 있는데다.. 내게 조금이라도 언짢은 소릴 들으면..
급기야 본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예의바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클레임 전화 무서워서라도 항상 고객 앞에서 조심을 해야 한다.
집이 좁다는 둥.. 계단이 높다는 둥.. 하는 얘기는 물론.. 한숨을 쉬거나..
같이 일하는 조원에게 짜증을 내서도 안 된다.
내가 아무런 뉘앙스도 없이 담담하게 얘기해도.. 고객은 자신의 자격지심과 보태서..
곡해를 하고.. 서글픈 심사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무거운 쇳덩어리들 올리고 내리기도 힘든 일이지만..
